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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의 날 함께 알아보기

이슈텔러 라이키미 2022. 11. 1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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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의 날 애니메이션
순국선열의 날

 

오늘은 11월 17일입니다. 서울은 며칠 새 비가 많이 내리다 날이 개었는데 날씨가 부쩍 많이 추워졌네요. 추워진 날씨에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1월 17일인 오늘은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우리나라에는 많은 기념일이 있지만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한 날인만큼 더욱 특별한 하루인 것 같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순국선열의 날이 어떤 날이고 어떤 위인 분들이 계시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순국선열의 날에 대해 알아보기

 

순국선열의 날 포스터
순국선열의 날

 

  • 분류: 법정기념일. 비공휴일
  • 시행일: 1997년 5월 9일
  • 주관: 국가보훈처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 후 우리나라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일제의 압박으로 강제적인 수탈, 말살 행위가 자행되었는데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유명한 시가 있죠. 일제강점기로 인해 온 국민이 고난을 겪을 때 봄이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열망으로, 빼앗긴 들을 찾고자 하는 강한 투쟁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순국선열의 날은 바로 이런 분들을 기리기 위해 재정된 날입니다. 빼앗긴 나라를 찾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앞장서 투쟁하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룬 업적과 뜻을 대한민국이라는 되찾은 빼앗긴 들판 위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함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위인들에 대해 알아보기

순국선열은 1910년 국권침탈 전후로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하고 항거하다 순국하신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잃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으셨던 이들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유관순(1902. 12. 16. ~ 1920. 9. 28.)

 

유관순
순국선열의 날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대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유관순은 일제에 의해 부모를 잃고 강한 독립의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것이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말하며 일제에 끝까지 항거하다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게 됩니다.

 

2) 안중근(1879. 9. 2. ~ 1910. 3. 26.)

 

안중근
순국선열의 날

 

을사늑약의 체결을 보고 상점을 팔아 삼흥학교, 오 학교 등의 인재양성기관을 설립합니다. 하지만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한 안중근은 1907년 연해주로 넘어가 의병운동에 참가합니다. 이후 사령관 자격을 얻어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입니다.

 

이후 1909년 구국투쟁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 11명의 동지들과 동의 단지회를 결성하여 손가락을 끊어 혈서를 적습니다. 1909년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대기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합니다.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된 안중근은 중국 뤼순형무소에 수감되어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됩니다.

 

3) 홍범도(1868. 8. 27. ~ 1943. 10. 25.)

 

홍범도
순국선열의 날

 

독립운동가이자 만주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활동한 인물입니다. 큰 성과를 거둔 업적으로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가 있으며 일본군을 급습하여 조국 해방을 위해 끝까지 항거하고 투쟁하였습니다. 이후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주선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부총재가 되었으며 고려 혁명 군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 양성에 이바지하였습니다.

 

4) 안창호(1878. 11. 9. ~ 1938. 3. 10.)

 

안중근
순국선열의 날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양기탁, 신채호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합니다. 자주독립을 위해서는 넓은 의미의 교육, 국민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민족개조론의 사상 아래 민족 양성에 힘쓰기 위해 다양한 종교, 교육, 언론활동을 진행한 것이 주요 업적입니다.

 

민족지도 활동 및 독립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갇힌 안창호는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1938년 병으로 인해 보석하였으나 건강으로 인해 휴양 중 사망하게 됩니다.

 

5) 윤동주(1917. 12. 30. ~ 1945. 2. 16.)

 

윤동주
순국선열의 날

 

직접적인 무장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과 대책을 시로서 열정적으로 토로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당대 대표적인 저항시인입니다. 짧은 생애 속에서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이 서린 그의 작품은 2022년 현재까지도 문학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1943년 교토에서 유학하던 중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경찰에 압송되어 후쿠오카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하지만 1945년 2월 16일 수감생활 중 급속한 건강 악화로 인해 향년 27세로 옥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6) 윤봉길(1908. 6. 21. ~  1932. 12. 19.)

 

윤봉길
순국선열의 날

 

훙커우공원 폭탄 투척으로 유명한 윤봉길 의사입니다.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김구의 주관 하에 4월 29일 천장절 겸 전승축하 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합니다. 이일로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 등은 즉사하고 이 외에도 노무라 중장, 우에다 중장, 시게미쓰 등에게 중상을 입힙니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잡혀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2월 19일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합니다.

 

지금까지 순국선열의 날에 대해 알아보고 대표적인 위인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분들이 흘리신 피와 눈물 위에 우리의 삶이 존속되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주어진 것들에 조금 더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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